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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눈동자 너머

by gnueng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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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막 개강한 봄날의 캠퍼스 교정에는 으레 생기가 흘러넘친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은 녹고, 그 위로 피어난 엷은 녹빛 싱그러움이 캠퍼스 교정을 물들인다. 부푼 가슴의 신입생들의 들뜸 가득한 발걸음으로 온 캠퍼스 교정이 가득하니, 차갑게 정체되었던 겨울 분위기는 간데 없다. 땅에도, 공기에도 가득 찬 넘치는 생명력이 묵은 과거를 털어내는 시기가 다시 온 것이다.

 

  그런 생기 넘치는 교정에 비해 묵어 정체된 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우리는 불편한 손님과 집주인의 관계와도 같았으니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피차에게 좋은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한 과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창 너머의 교정에 감흥 없는 눈길을 던지는 것을 택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끼리 서로 가까이 있어봐야 이질적일 뿐이다.

 

  정부 지침 하 절전 캠페인의 일환이라며 오후 5시까지는 자연채광에 의존하는 과사무실의 창은 서향이었다. 덕분에 지금 같은 오전에는 해가 바로 들지 않아 조금 어두운 감이 있었다. 그런 어둑한 사무실 안에서 밝은 교정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눈이 피로했다. 캠퍼스 교정의 풍경에서 눈을 돌려 다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처리해야할 업무가 산더미다. ‘어휴’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등을 슬쩍 의자에 기대니 의자가 위태하게 기울며 ‘따다닥’하는 신음을 토한다. 그 바람에 움찔한 나는 자세를 바로했다. ‘운영비는 이런데다 쓰지 뒀다가 어디다 쓰나...’ 생각하며 종이컵에 담긴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번 홀짝 들이켠다. 커피나 홀짝이고 밖이나 구경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보아야 일이 알아서 해결될 리는 만무한 법이다. 하지만 채점해야할 학부생들 과제에, 교수가 시킨 업무에, 해야할 일이 산더미다보니 그에 압도되어 도무지 손을 대고 싶은 의욕이 나질 않았다.

 

  핸드폰 액정을 켜 시간을 보니 10시 42분이었다. 

 

 ‘3분만 쉬었다가 진짜로 일해야지.’ 

 

  나는 괜히 펜을 집어 한 바퀴 돌렸다. 종이컵 가장자리를 빙 돌려가며 잘근거리다 보니 금세 종이컵 테두리가 납작해졌다. 닫힌 창문에 소리가 한번 여과되어 먹먹해진 꺅꺅거림이 귓가를 간질인다. 문득 교정을 내려다보니 연분홍 재킷에 파란 빵모를 쓴 귀여운 신입생 여자아이 하나가 제 또래 여자아이들과 웃는 낯으로 걸어가고 있다. 풋풋하니 좋은 때였다. 나에게는 사고뭉치 덩어리지만 말이다.

 

  조교라는 짓이 처우에 비해 무지막지하게 엿 같은 일임은 어쩌면 동서고금, 시대를 막론한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교수의 노예요, 이런저런 요구를 들고 오는 학과생들의 심부름 센터 직원이요,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와 여기저기 들이받는 신입생들의 유모 역할까지 도맡고 있으니… 이쯤 되면 내 신분이 푼돈 받는 노예인가, 진리를 탐구하는 고등교육기관과 계약 관계를 맺은 학자인가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 오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은 봄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건만은 나는 개강 초 어마어마한 업무량을 떠맡은 채 사무실에서 생명력을 천천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빨려 고사해가고 있었다. 심지어 끝내야하는 과제까지 별개로 있었다.

 

  요즈음은 그래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딘가 음산한 사회분위기와 눈빛 형형한 복학생들의 모습에 힘입어 자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다행이었다. 일이 수월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참전용사 출신이라는 딱지와 전쟁 전 자주 부대끼던 후배 동생들이 주축으로 잘 단속해주는 덕분에 통솔이 어렵지는 않았다. 형, 오빠하며 부르며 싹싹하게 구는 후배들과 살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나름 일에 대한 보람도 느꼈다. 그렇다고 한들 사건사고가 아예 사라질리는 없었고, 조교라는 사람이 한창 사고가 터지기 십상인 개강 초부터 속 좋게 학부생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긴채 뒷짐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기가 감도는 개강 초 분위기의 이면에는 어쩐지 뒤숭숭한 기운이 못내 맴돌았다.

 

  뒤숭숭함의 근원은 복학생들이었다. 신입생들보다 그들이 오히려 더 걱정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조용히 스며들듯 그들은 복학하고 있었다. 시한 신관을 가슴 속에 숨긴 채 겉보기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대학 졸업 직전, 늦여름 기운이 선선한 가을 바람 속에 밀려나기 시작할 무렵 나는 동원 2년차 예비군으로 전시 소집되었다. 종전 뒤 반년만에 동원해제 대상자로 지정되어 다시 대학에 돌아왔고, 어영부영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내던져졌다. 그 모든 일이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지나가 한동안은 머릿 속에 치과 마취 주사라도 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 시기를 떠올리자면 이어진 파노라마가 아닌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는 것만 같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었다. 멀쩡히 돌아왔으니까.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임자 없는 남자 혼자 집 떠나와 객지 서울서 살자면 외롭고 적적해지는 법이라, 매달 한 번 정도 나는 춘천에 있는 본가에 다녀오곤 했다. 집에 가서 맛있게 어머니 집밥을 한상 얻어먹고 나면 나는 늦게 들어오니 기다리지 말라고 이르고는 외출하고는 했다. 그러고는 객지 생활을 하는 나와 달리 춘천에 눌러 앉은 불알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해온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씹어대고 있으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와중에도 일말의 위로를 찾을 수 있어 좋았다.

 

  그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선 꼭 창식이놈 이야기가 나왔다. 술자리의 개회 자체가 창식이에게 바치는 의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꼭 술을 시킬 때면 마시지도 않을 클라우드 맥주 한 병을 따로 시키고는 했다. 평소 ‘국산 맥주는 클라우드지 미개한 말오줌충 새끼들아.’ 하고 낄낄거리던 창식이놈 몫이었다. 항상 아무렇지 않은 듯, 누가 오기라도 할 것만 같이 자리를 비워놓고 맥주를 놓아두곤 했지만 그 빈자리가 채워지거나 그를 위해 따라 놓은 맥주 잔이 비워지는 일은 없었다. 다섯 중 하나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창식이 녀석은 우리 중에서도 가장 으쌰으쌰하는 것을 좋아하던 친구였다. 사내다움이나 인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어딘가 순진한데가 있어 우리들이 ‘꼴통’ 취급하며 놀려먹곤 하던 그는 흥남에서 핵폭발에 휘말려 불귀의 객이 되었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놈이 고통 없이 한 순간에 죽었기를 빌고, 감히 그랬으리라 믿을 뿐이었다. 넷 중 딱히 종교를 믿는 사람도 없건만 우리는 항상 첫 잔을 따르기 전 창식이 잔부터 떠놓고 기도를 겸한 건배사를 했다. 건배사가 끝나면 아랑곳 않고 예전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빨개진 얼굴의 형섭이가 안주로 나온 부대찌개를 까닭없이 휘적거린다. 형섭이는 취기가 오르면 안주를 휘적이는 습관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형섭이가 안주를 휘적이기 하는 그 즈음마다 항상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듯 모두 적당히 취기가 올라 있곤 했다. 이 패턴을 언젠가 눈치챈 뒤부터 나는 형섭이의 주사를 신호로 페이스를 조절하곤 했다. 노곤한 술기운에 다들 말수가 적어지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이런저런 마음 속 이야기가 나온다. 시시껄렁한 학창시절 추억담, 요즘 사는 얘기, 일 얘기, 군대 시절 휴가 나간 평양에서 만난 북한 여자와의 짤막한 로맨스, 요즘 눈 여겨보는 여자 얘기… 그리고 전쟁 이야기. 미쳐 돌아가는 세상 얘기. 막막한 미래 얘기. 창식이 얘기.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유독 재민이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그는 요덕 수용소를 가장 처음 ‘해방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럴제면 형섭이가 괜히 숙연해진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나서서 이야기의 결론을 짓고는 했다.

 

 “씨발 인생 좆같은거, 야, 김재민, 울지마 씨바. 인생 별거 있냐? 다 잊고 우리 빠이팅하자, 빠이팅 새끼들아.”

 

  매번 만날 때마다 거기서 거기인 얘기였지만, 난 그 모임이 참 좋았다. 그게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월급정산 뒤 그 다음 주말에 모이자고 단톡방에 톡이라도 던질제면 다들 툴툴거리면서도 한 번을 빠지지도 않고 꼬박꼬박 나왔다.

 

  이렇게 모임만 가지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야 시바 야자 째고 롤 5인팟 돌리던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거의 10년 전 얘기가 다 되어가네.” 하는 넋두리였다. 과연 그랬다. 엊그제 같았던 고교시절이 벌써 근 10년이 다되어간다. 시간의 흐름이 참 빠르다. 점점 가속해가듯.

 

  돌이켜보면 오들오들 떨며 그때는 크게만 느껴지던 어머니 당신 손을 꼬옥 붙잡고 학교에 처음 갔던 것이 벌써 근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대학교 졸업장을 받아들었을 때는 앞으로도 학생을 하기에는 너무 학생을 오래 했다고 생각했더랬다. 초중고 12년에 더해 대학교 4년, 군대에 전쟁에 휴학까지 더하면 거의 20년 가까이를 학생 혹은 잠시 학업을 놓아둔 학생으로 살아왔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전쟁을 겪고 돌아온 뒤엔 도무지 학교에 더 있고 싶지가 않았다.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었다. 그런 마음은 세상으로 나옴과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장 졸업을 하고 고개를 들어 본 앞이 아수라였으니까. 전쟁 뒤 사회에서는 북한에 다시 돌아가는 것 이외에 적당한 취직 옵션이 보이지를 않았다. 으레 우리끼리 하던 우스갯소리인 창업이라도 해야할지, 사기업이나 공무원 북한 지역 특채로 북한에 다시 가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내가 선택한 것은 현실에서의 도피였다. ‘남반부’ 경기가 얼어붙은 그때 창업은 패가망신하기 딱 좋았고 북한은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케이블 채널에서 언젠가 틀어주었던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고3 수험시절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던 때 우연히 그 영활 보았더랬다. 그래서일까 영화 내용은 참 선명히도 머리에 남았다. 영화에서 늙은 죄수 브룩스 헤이들런은 출소를 며칠 앞두고 동료를 인질로 잡아 간수들을 위협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의 요구는 자신을 다시 잡아 가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외계 같은 사회보다는 감옥에 남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런 심리였던 것 아닐까. 전쟁이 끝나고 안정화작전 국면으로 접어들며 지루한 비정규전의 수렁이 된 북녘 땅으로 자진해서 돌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의 심리도 아마 비슷한 무언가겠지. 뭐,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대충 그런 심리였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 갔고, 과 조교가 되었다. 학교가 나를 받아준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러나 전후 조교 일은 여러모로 큰일이었다. 전쟁통에 어디선가 전사한 녀석들, 어디론가 증발하기라도 한 듯 실종된 녀석들, 다시 복학하는 놈들, 텅 빈 눈으로 과사무실에 찾아와 밑도 끝도 없이 휴학계나 자퇴서를 던지는 놈들 - 절반 정도는 사지 어딘가가 온전치 못한 모습이었다. 이들의 재학증명서들과 온갖 행정서류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한편으로 - 야매 상담사 역할과 학생의 본분까지 해내면서, 교수가 시키는 온갖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아 하는 것이 나의 매일이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그리고 학기 초인 이젠 신입생들도 챙겨야 할 판이었고.

 

  종이컵 바닥에 얕게 찰랑이는 믹스 분말 커피를 마지막으로 호로록 비워내고, 사흘내리 치우지 않아 근 열댓 잔은 쌓인 종이컵의 탑에 한 층을 더 쌓는다. 그러고서는 앞에 놓인 서류 뭉치를 잠깐 응시하다가, 분침이 46분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4분만 더 게으름을 피울 요량으로 나는 휴대폰을 집어 시사뉴스를 훑기 시작했다. 한참 혀를 차고 있는데 문득 조용하던 과사무실 밖이 좀 소란스럽다 싶었다.

 

  누가 과사무실 문을 두어번 두드린다 싶더니 문이 슬며시 열려왔다. 과사무실 안으로 쭈뼛쭈뼛 얼굴을 들이민 것은 서울역 참전용사 노숙자의 전형과도 같은 사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초콜릿이 녹아내리다 굳은 것만 같은 오른쪽 얼굴 절반과 목덜미까지 이어진 화상자국. 그나마 비교적 성한 왼쪽 얼굴도 눈매를 제외하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화상 기색이 완연했다. 헤진 검은색 야구모자와 위축된 듯 어정쩡하게 움츠린 자세.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눈은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 대신 녹아내린 오른쪽 입가가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모습으로 기묘하게 비틀린 것이 눈에 띌 뿐. 게다가 옷차림도 가관이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 물빠진 유행지난 바람막이에 여기저기 헤지고 검댕이 묻은 카키색의 골덴바지. 밖의 웅성거림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간에 엉거주춤하게 선 우물쭈물하는 빛의 사내가 어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에 나도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어기가... K대학교 켱영하꽈 꽈사무실이 맞는지이...”

 “아, 예, 바로 찾아오셨습니다.”

 

  사내가 선 문간 밖으로 웅성이는 소리가 도통 멎지를 않는다. 어떤 상황인지 나가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사내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사무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 사무실 바깥에는 갓 고등학생 티도 채 벗지 못한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못 볼 것이라도 본 표정으로 안절부절이다. 선배 학번 몇몇이 신입생들을 명백히 적의 담긴 눈으로 째려보며 지나갔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는 듯 했다.

 

  그들에게서 얼핏 들려오는 웅성임 속 ‘노숙자’, ‘냄새’, ‘경비’, ‘경찰’, ‘하비 덴트’ 같은 단어에 굳이 자세히 듣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감이 왔다. 무늬만 대학생이지 철부지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모습에 울컥 짜증이 밀려왔다.

 

  추울 때는 등 따뜻한 온실에서, 더울 때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부족함 없는 십대를 보냈을 아이들. 부모의 보살핌 속에 편안한 하이패스 인생을 살아온 결과로 대학에 들어온 아이들. 그런 환경의 수혜에 힘입어 얻어낸 ‘대학 입학’이라는 결과를 자신의 노력의 결과물이라 여기며 오만과 도취에 빠져있는 그들. 새로운 삶에 대한 근거 없는 설렘으로만 가득 차 있을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전쟁의 부산물이라는 야만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공감할 수 없기에 사람은 잔인해진다. 그 진리를 지지하는 실증 사례들을 신물나도록 지겹게 보아왔다. 나는 불호령을 던져 그들을 훑어 버렸다.

 

 “야! 무슨 구경거리 났어! 다들 갈길 안 가?!”

 

  불호령에도 신입생들은 오히려 제들이 옳다는 듯 흘겨보며 ‘아니 학교가 걱정되서 그런건데 별꼴이야...’ 하고 웅얼거린다. 그들이 마침내 슬금슬금 흩어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다시 과사무실 문을 열었다. 과사무실 문을 쾅 닫아 걸어잠근 나는 문 뒤켠에서 여전히 엉거주춤한 폼으로 기다리던 사내에게서 풍기는 악취를 애써 무시하며 정중히 물었다. 

 

 “예, 바로 찾아오셨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다룸이 아아니고오... 즈에가 유으기 흑생한테 전할 물거니 있으어서...”

 “아 정말요? 잠시만요. 저쪽에 앉으시죠.”

 

  내 자리로 다가간 나는 나는 옆 책상에서 회전의자를 빼내다가 사내가 앉기 좋도록 그의 앞에 밀어 놓았다. 다른 조교의 의자였는데, 영 재수없는 놈인지라 허락 없이 의자를 막 쓰는데 일일히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지금 과 사무실에 없는 것도 분명 남학생 휴게실에 처박힌 채 담배나 태우며 핸드폰질이나 하느라 없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런 근무태도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진짜 그 자식이 싫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쟁이 터졌을 때 때마침 해외 연수 중이었던지라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놈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그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떠벌리고는 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파렴치한 작태에 핀잔이라도 누가 할라치면 그는 ‘억울하면 니도 나처럼 연수 가있지 그랬냐 노예 새끼야. 나도 군대 갔다온건 매한가진데 참전용사라고 유세 떠냐? 꼴통새끼.’ 따위의 싸가지 없는 어조로 성을 내오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정말로 참전용사 출신 후배 학번에게 술자리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는 입을 닥치는 법을 배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놈 의자 따위 알게 무엇이냐는 말이다.

 

 “앉아서 말씀하시죠.”

 

  그 말에 머뭇거리던 사내가 어수룩하게 목례를 까딱 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으며 흘끗 마주친 사내의 왼쪽 얼굴 눈매가 묘하게 낯익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스친다. 마치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그… 쟈리에 안자도 실레가 안댈른지 모르겐네요…”

 

  불안한 듯 어물거리는 사내의 모습에 나는 도리어 더욱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커피라도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 하시죠.”

 

  이 사내는 도대체 며칠을 못 씻은 것일까. 견딜 수 없이 지독한 체취에 가뜩이나 꿉꿉한 과사무실 공기가 더욱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애당초 그가 어떻게 학교 경비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는지부터가 미스터리였다. ‘오늘 날씨가 참 좋죠?’ 하고 능청을 떨며 나는 창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캠퍼스 교정의 생기발랄한 소음이 사무실로 훅 밀려 들어온다. 그 소리를 배경음 삼아 나는 아까 끓인 뒤 채 식지 않은 주전자를 다시 덥히기 시작했다. 군대 2년부터 조교생활까지 믹스 커피 타온 경력만 해도 이제 3년이 족히 넘어간다. 요즈음엔 교수까지 그 맛에 중독되어 과사무실에 시원하게 아이스커피나 한잔 타달라며 툭하면 쳐들어오는 노릇이었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사내에게 믹스커피 한잔을 달게 타주니, ‘이야, 거 참 마시 죠으네요...’ 하고 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뒤틀린 오른쪽 입매가 기괴하다. 그런데 아까 눈매가 신경 쓰이고나니 이제는 그의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까지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았다. 그저 기분 탓일까. 하지만 방금 말하려던 것을 까먹은 것처럼 어딘가 속이 못내 답답했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서 복무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사내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다. 잠깐의 침묵 뒤 그가 조심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즈어는... 시보사단 나았어요.”

 

  15사단이라. 멀지 않은 곳에서 싸웠구나 싶었다. 개전 초 어느 부대가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15사단은 그 중에서도 좀 더 지독하게 두들겨 맞은 사단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유명해진건 개전 초 철원 15사단 관할 지역에 집중적으로 화학전이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

 

 “힘든데 나오셨네요. 저는 현역으론 백마부대 있다가 동원 2년차에 재징병되서 66사 나왔습니다.”

 

  사내는 그저 ‘음...’하며 한번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다. 그 모습이 어째선가 자꾸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충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정도로.

 

 “혹 저희 어디선가 본적이 있나요?”

 

  묵묵부답. 커피향과 그의 체취가 섞인 꿉꿉한 과사무실 공기에 불안한 침묵이 감돈다.

 

 “음...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즈에가 이 하콰 재학생헌테 져내드릴 물거니 이써가지고...”

 

  사내는 주섬주섬 안주머니에서 누리끼리 두툼한 군사우편 봉투 하나를 내밀어왔다. 잔뜩 주름이 가있는 봉투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가 싶어 봉투를 열려고 하니 사내가 한사코 ‘아아니, 열지는 므세요...’ 하고 격하게 반응해온다. 그 모습에 오히려 어딘가 더 찜찜한 기분이 들어 학과 규정이라며, 내용물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조곤조곤 이르니 사내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아...’ 하고 단념하는 눈치였다.

 

  그의 봉투에서 물건을 꺼내보니, 편지 몇 장과 반지가 나온다. 편지를 집었더니 편지는 읽지 말라며 의자에서 튀어나올 기세인 사내의 절박한 모습에 편지는 가만히 내려놓았다. 이어 반지를 집어드니 갑자기 사내가 손을 뻗어 반지를 낚아 채어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반지를 낚아채기 직전. 보고야 말았다. 반지에 새겨진 각인을. 

 

 ‘OWH ♡ KH’

 

  고개를 들어 얼어붙은 그를 본다.

 

 “당신 이거 어디서 났어요.”

 

  피가 차게 식는다.

 

* * *

 

  1X학번 오원호와 두 학번 느린 김현은 과에서 유명했던 선남선녀 CC였다. 오원호는 내가 막 복학하여 다시 학과 생활에 적응해갈 무렵 가장 먼저 친해진 과 후배 무리 중 하나였다. 당시 슬슬 군대 갈 생각을 하고 있던 녀석이었는데, 오며가며 이야기를 해보면 사람이 경우 있으면서도 친근한 것이 괜찮은 놈인 것 같아 가끔 술도 함께 먹곤 했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로 인기도 꽤 많은 녀석이었는데, 그가 김현을 만난 것은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술은 영 자신 없다며 온통 울상이던 신입생 현이의 흑기사를 해준 것을 인연으로 둘은 언제부턴가 과CC가 되어 있었다. 그 덕에 녀석은 남자친구 한번 사귀어본 적 없다는 현이를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꾀어내 채간 나쁜 도둑놈이라는 괘씸죄에 걸려 - 심지어 군 입대까지 앞두고 있었으니, 과모임 때마다 술게임이란 명목으로 우리는 녀석을 으레 표적으로 찍어 죽이고는 했다. 현이가 예쁘고 성격이 좋았다는 부분에서 질투 아닌 질투가 개입한 것도 컸다. 좋은 때였다. 다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던.

 

  오원호 녀석은 술버릇도 유쾌한 놈이었다. 원호는 결코 술이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 짜고치는 고스톱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녀석 옆에 소주병이 한 서너병쯤 뒹굴기 시작할 즈음이면 녀석은 ‘아, 행님. 줴가 싸~랑하는거 아시죠?’ 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앵겨오며 2차를 강력하게 주장하곤 했다. 못 이기는 척 그를 끼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놀다가 그가 완전히 맛이 가버리면, 우리는 그제서야 현이를 부르곤 했다. 그때마다 현이는 우리한테 빽빽 소리를 질러대면서도 한 번을 못 나오겠다고 하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현장에 도착하면 술기운이 잔뜩 올라 신나있는 우리를 샐쭉한 표정으로 타박해대곤 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선배들이 화장실에 원호를 데려가 토를 시키고, 여명808을 먹이고, 이를 보고하고, 현이와 함께 가위바위보에 진 우리 중 한명이 그를 업은 채 3차를 가 어묵이나 라면 따위를 사먹이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끝나면 우리는 녀석과 현이를 택시에 같이 밀어 넣고는 ‘냉동 참치지만 알아서 잘 해봐!’ 하고 현이를 놀려먹고는 했다. 그때마다 현이는 질리지도 않게 항상 머리끝까지 빨개져서는 ‘아 무슨 소리에요!!’ 하고 택시 문을 닫아주는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러오곤 했다. 그런 그녀를 피해 낄낄 웃으며 그 길로 도망쳐나와 파장하는 것이 우리 과 모임의 의례였다. 그런 오원호는 사생활 추문 없이 행실도 좋고, 학점도 잘 챙기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예의도 발라 선후배, 동기, 심지어는 교수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인기 좋은 녀석이었다. 

 

  전쟁 발발 뒤로 일체의 연락이 끊긴.

 

* * *

 

 “이거 어디서 났어요.”

 

  굳은 표정으로 사내를 추궁하니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우물쭈물할 뿐이다.

 

 “진짜 중요한 얘기에요. 이거 어디서 났어요.”

 “제에가 요덕에서 으무병이었는데... 그게 21사 애드리 근춰에서 작저늘 띠다가 대전차매복조에 당해따카더라구요... 므아침 가까이 있는게 우으리여서 년락바다 갔는데... 브상자 하나가 이 븡투를 꼭 지어줌서... 꼭 K대 국제하꽈 과사에 저내달라고... 군데 그 지쿠에 즈어도 박겨포를 마자서 정시늘 잃는 바라메 그 사라마고는 헤어져씀니다... 잘 모라요...”

 

  15사는 요덕에 가지 않았다.

 

  이기자 출신의 재민이는 가끔 술자리에서 요덕 얘기를 꺼내곤 했다. 녀석이 좀 우울한 날일 때 술이 들어가면 그랬다. 어떻게 그의 중대가 선봉으로 요덕, 그 중에서도 용평 완전통제구역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어떻게 미처 도망치지 못한 몇몇 보안원들이 그들 대대가 들이닥치던 그 순간까지도 증거인멸을 위해 수감자들을 총살하고, 또 동시에 불태우고 있었는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재민이는 한참을 망설였다. 눈을 내리깔고 소주 서너잔을 연거푸 들이켰을까. 그제서야 재민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더랬다. 대대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수감자들이 ‘자치적으로’ 부역자들과 보안원들을 ‘재판’할 기회를 주었다고. 그의 대대는 수용소의 ‘교통정리’를 끝내고 후속하는 21사단에게 관리를 인계한 뒤 그곳을 떠났다고 했다.

 

 

  원호의 자대는 21사단이었음은 틀림없다. 그가 신교대에 입영하던 날 그를 배웅가기까지 했었으니까. 마치 역할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눈알이 빠져라 울던 현이와 그런 그녀를 달래며 쓴웃음을 짓던 그의 얼굴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 사내가 말하는 15사단은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요덕에 간 적이 없다. 

 

  15사단은 요덕이 아닌 평남 양덕 방향으로 진군했었다. 그 근방을 전쟁 중 지난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부상당한 원호에게 봉투를 받았다고 하지만, 꾸깃꾸깃 오랫동안 간직한 듯한 모습의 봉투는 핏물 한 방울, 흙 한 톨 묻은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저 반지에만 흠집이 몇 개 가있을 뿐. 이 사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 순간이었다. 침묵 속 불안한 듯 시선을 내리깔며 모자를 고쳐쓰는 그의 왼팔목에서 시계가 드러난 것은. 흔하디 흔한 검은색 G-Shock 시계였다.

 

  그저 흔한 시계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심장이 철렁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일까. 그의 익숙한 왼눈매가, 그의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쇳소리 나는 저음이, 그의 시계가, 그가 낚아 챈 반지가, 깨끗한 봉투 안에 담겨 펼쳐진 책상 위 그의 편지들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답을.

 

  현이는 원호가 입대할 때 검은 G-Shock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의 무사를 빌며 그의 손목에 채워주었었다. 흩어져 떠다니던 퍼즐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명확한 그림으로 맞아 떨어져나간다. 섬뜩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소름이 돋는다.

 

  반지를 낚아 챈, 꽉 쥔 그의 오른손을 향해 나는 손을 뻗는다. 순순히 그의 손을 풀어내도록 손을 내어준 그는 시선을 피한 채 말이 없었다. 반지가 내 손으로 넘어온다.

 

 “야, 너 오원호지.”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린다.

 

 “나는 그 사람 모라오... 나는 모르어요... 나는 그냥 부탁 바든거에요…”

 

  하지만 나는 보았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움찔하던 그의 어깨를. 화들짝 놀라 겁에 질린 듯한 그의 눈동자를. 본적이 있는, 누군가의 눈과 닮은 눈동자였다. 자위에 늪에 빠져들어 허우적이던 사춘기, 거울 속에서 자주 마주치던 나의 눈을 닮아 있었다. 자그마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문을 망연히 응시하던 그때 거울 속 언뜻 마주친, 살구빛 조명이 드리운 나의 얼굴 속 식겁한 눈동자. 동창회 자리서 넘칠 듯 찰랑이는 소주잔에 섞어 물었던 짝사랑이자 첫사랑이었던 소녀의 근황. 그리고 그에 돌아온 그녀가 전학 가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대답. 그 말에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아 그렇구나... 진짜 안됐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한 잔 받은 소주잔에 비치던 나의 텅 빈 눈동자. 사내의 눈은 그 눈을 닮아 있었다.

 

  심증이 확증으로 변하던 바로 그 순간 가슴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울컥 차올라왔다. 뿌옇게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며 “너 오원호지. 야 오원호 이 개새끼야 오원호 맞는데 왜 맞다고 말을 못해 이 새끼야... 니가 이렇게 됐다고 내가 모른 척이라도 할 것 같았냐. 내가 그렇게 개새끼로 보이더냐, 이 죽일놈아. 왜 이 꼴이 됐어... 이 새끼야...!” 하고 다그치는데 사내는 “아니이요, 아니이요... 나는 그럼 사람 모라요... 그 사람 죽어딴 마리에요...” 허겁지겁 미처 잡아챌 틈도 없이 황망히 과사무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시야를 뿌옇게 흐리는 눈물을 마구 닦아내고 다급히 따라 뛰쳐나가봐야 그는 이미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겨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다.

 

  한참을 건물을 뛰어다니며 그를 찾아보다가 결국 그를 찾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 뒤 과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때 하필 복도에서 마주친 후배 하나가 “형, 울었어요? 얼굴이 왜 그래요?” 물어온다.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하품을 크게 했다 인마.” 하고 대꾸했다. 과사무실 밖 창문을 내다보았다. 마침 동 현관을 나서는 그가 보였다. 잔뜩 등을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와글거리는 인파 속을 홀로 거슬러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작고, 또 초라했다.

 

  현이는 전쟁이 끝난지 1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원호를 찾다가 두 달 전 목을 매 자살했다. 육군의 ‘의병 제대’라는 통지에도 돌아오지 않는 그를 찾아다니던 그녀였다. 모두가 오열하던 현이의 입관식 때 그녀의 약지 손가락에는 내 손아귀 속의 것과 똑같이 생긴 반지가 하나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육신이 한 줌의 재로 화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새하얀 재가 되어 나온 현이를 보고 자지러지다 못해 정신을 놓던 그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기억이 하나하나 스쳐갈 수록 반지를 움켜 쥔 손아귀에도 점점 힘이 들어간다. 너무 세게 움켜잡은 탓일까, 손 어딘가가 찢어졌는지 찐득거리는 피가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피에 잠긴 반지를 그대로 손에 쥔 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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